영화 ‘사랑의 모양’을 보고

우리가 알고 있는 고전 동화 속의 비극을 본뜬 영화 사랑의 모양(The Shape of Water; 셰이프 오브 워터)은 편견없는 사랑을 전한다. 미국의 정보국 비밀연구소에서 청소하는 언어장애인 주인공이 그곳에 잡혀 온 물고기 인간과 사랑에 빠지고, 해부가 예정된 물고기 인간의 구출을 기획한다. 원제처럼 물의 모양은 그것을 담는 용기와 상태에 따라 변하듯 영화에서 물은 사랑을 상징하고 그 사랑은 물처럼 편견을 벗어나 이루어진다.

인어공주

주인공은 고전동화 인어공주에서 나오는 인어공주이다. 다만 여기서 목소리를 잃은 공주는 물고기 인간이 아니라 인간인 주인공이다. “그냥 너는 꺽꺽댈 뿐이야”라고 악당이 주인공에게 말하듯 주인공은 정상인처럼 말을 하지 못하고 물고기 인간 역시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만 낸다. 하지만 그들은 외로움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비록 그 둘 간에 일반 인간들이 하는 말을 통한 대화는 불가능하지만, 그들은 수화와 몸에서 내뿜는 빛 등 소리를 통하지 않은 다른 방식으로 소통하며 사랑을 이루어 나간다. 감독은 소리로 대변되는 이성적이고 상징적인 사랑의 표현 방법뿐만 아니라 외로움이라는 작은 공통 요소만으로도 충분히 사랑에 빠지고 이를 이루어 나갈 수 있음을 나타내고자 한다.

호두까기 인형

영화가 대단원을 이루면 여주인공과 물고기 인간은 마치 차이콥스키의 호두까기 인형처럼 춤을 추고 무대의 주인공이 된다. 똥, 오줌을 닦는 미천한 직업을 가진 장애 여성, 그리고 인간에게 잡혀서 고문을 받고 이상한 소리만 지르는 비천한 존재는 사랑이라는 무대에서 주인공이 되고 춤을 춘다. 사랑은 꼭 고귀한 신분으로 여겨지는 사람만 할 수 있는 전유물이 아님을 보여준다. 오히려 캐딜락을 타고 화목해 보이는 가정에 사는 성공한 백인 남성 악당은 부인과 섹스를 하며 부인의 입을 막는다. 주인공 커플에게 있어서 사랑의 매개체가 물과 외로움이라면, 악당 커플에게 있어서 섹스를 시작하는 단어는 캐딜락이라는 성공에 대한 욕망이다.

소외된 이들과 예수

영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소외된 사람들이다. 언어장애인 청소부, 흑인, 게이 남자 그리고 심지어 사람이 아닌 물고기 인간이다. 하지만 이들은 사랑하며 인생에 있어서 행복을 찾으려고 끊임없이 노력한다. 이들에게 신의 모습과 매우 다를 거라고 생각하는 괴물인 물고기가 오고 백인인 악당은 “인간은 신을 닮았고 백인이 흑인보다 더 그럴 거라고 얘기하며 ‘정상적인’ 것으로 취급받는” 그들이 다른 모습을 하는 ‘비정상적인’ 것을 멸시하고 지배할 권리가 있음을 주장한다. 이에 “나는 신의 모습을 본 적 없어서 잘 몰라요”라고 흑인 청소부는 소극적으로 저항하며 이는 나중에 이 영화의 결말에서의 복선으로 작용한다.

이것은 기존의 백인사회가 흑인과 게이와 외국인과 장애인과 모든 비정상적이라고 여겨지던 소외당하던 이들을 배척하고 멸시하는 모습으로 비추어지고 영화 속 텔리비전 장면에서 나오는 흑인 운동을 통해 다시 한번 표현된다.

마치 예수가 세리, 고아, 과부, 병자에게 왔던 것처럼 물고기 인간이 이들에게 와서 사랑을 이루고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악당이 “너는 신이었구나”라며 결국 우리가 비정상적으로 여기며 배척하고 심지어 죽이려고 했던 존재가 사실은 신이었음을 드러낸다. 물고기 인간은 게이인 주인공 친구의 상처를 치유하고 마치 예수가 부활한 것처럼 총에 맞고도 부활을 한다. 이 영화는 예수에 대한 패러디도 갖추고 있다.

초록색과 물

이 영화에서 초록색은 이질감을 나타낸다. 물고기 인간은 초록색의 피부를 하고 있어 인간이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괴롭히고 해부하고 죽일 수 있는 구실을 만들어준다. 사람들은 예전 기독교가 이교도들을 죄책감 없이 살육했듯, 백인이 흑인들을 노예 삼았듯 사람과 다름을 나타내는 초록색 존재를 마음껏 괴롭히며 실험의 대상으로만 생각한다.

물고기 인간이 흘렸던 피가 붉은색임을 알아차린 이는 주인공밖에 없으며, 주인공은 그도 자기처럼 외로움을 느끼고 소통을 할 수 있는 존재임을 알고 마치 세상에서 외톨이이며 사랑하거나 사랑받을 수 없는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며 사랑에 빠진다.

초록색은 모순의 색이기도 하다. “초록색은 미래의 색”이라고 얘기하며 사람들은 캐딜락을 팔고 젤리를 만들고 광고를 하지만, 사실은 역겨운 맛을 지닌 파이 속의 고명처럼 모순을 나타낸다. 사람들이 색깔과 모양이 다르다고 차별하고 배척해 마지않던 인종차별 및 정상이 아닌 것으로 취급되던 모든 것들에 대한 박해의 역겨움을 상징하는지도 모른다.

물은 순환하며 영원히 사라지지 않듯, 어디에 담아도 모양만 변하고 본질은 변하지 않듯, ‘비정상적인’ 사람의 사랑 역시 ‘정상적인’ 사람의 사랑과 같음을 나타내는 메타포로 작용한다.

또한, 물은 부활이며, 자유이며, 더러운 것을 깨끗하게 하는 정화이다. 물에 들어간 주인공의 목에 있던 상처는 숨을 쉬는 아가미로 변하며, 주인공 커플은 물속에서 사랑을 나누며 자유로움을 만끽한다. 벗은 몸으로 물에 들어가 있는 주인공과 물고기 인간은 아치 아이가 벌거벗은 몸으로 어머니의 양수 속에 있는 것처럼 순수하게 사랑한다.

사랑의 모양 영화 리뷰 whatakdrama.com
Photo courtesy of 20th Century Fox

비록 나와 상대방이 세인들의 기준과 다른 모습을 하고 있더라도 달걀을 주고, 음악을 들려주며 외로움까지도 공유하려는 편견없는 용기 앞에서는 순수한 사랑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세상에 모든 조건이 ‘정상적인’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비록 감독은 장애인, 흑인, 게이, 물고기 인간이라는 소외된 계층으로 사랑을 얘기했지만, 어느 한구석엔 누구나 장애를 가지고 있으며 어느 한구석은 세상 모든 사람과 다른 우리 자신의 사랑을 이야기하고 싶었던게 아닐까?


지난주 토요일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사랑의 모양 팀은 작품상, 감독상, 미술상, 음악상 부분에서 4관왕을 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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